다윗은 공의를 집행하는 이스라엘의 왕의 입장과,아들을 용서하려는 아버지 사랑 사이에서,갈등하다 아들을 잃지만,하나님께는 비밀스러운 지혜, 예수 그리스도가 있다는 사실이 다른데아들이 아버지께 순종하여 우리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달림으로, 하나님의 공의는 이루어지고, 사람을 향하신 사랑도 완성하게 됩니다. 하늘의 아버지와 이 땅에 온 아들이 합력하여 공의와 사랑을 동시에 이루는 것, 하나님의 공의를 보여주는 극적인 장면은, 아들 예수를 십자가에 매다는 것,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는 것은, 사람이 달려야 하는 십자가에 사람 대신하나님…
한번 죄의 노예가 되면 더 큰 죄를 저지르는데, 불륜으로 시작된 죄는 더 큰 죄를 낳고 위장살인으로 발전합니다. 만일 하나님이 붙들어 주지 않는다면 우리 역시 죄에 빠질 수밖에 없는 존재로 하나님의 종이라도 한번 죄에 빠지면 한 순간에 모든 것을 날려버립니다. 죄를 합리화하거나 숨기려는 노력은 더 많은 죄를 짓게 합니다.요일 1: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다윗이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하나님 앞에 회개하였더라면 하나님은 다윗을 위하여 …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심은 우리에게 보요주신 섬김의 본이다. 하나님이신 예수님은 스스로 종의 자리로 내려오셔서 죽기까지 복종하심으로 우리 인간의구원을 위하여 섬기셨다. 이 섬김의 본을 보여주시면서 우리의 주님께서 발을 씻기시니 제자들도 다른 사람의 발을 씻기는 일이 옳다고 하셨다. 예수그리스도의 보혈로 목욕을 한 성도들은 매일 자신의 발을 씻고 다른 사람의 발을 씻기는 섬김의 삶을 위하여 우리 안에 있는 상처를 주님으로부터 치유받아야 한다.
불륜을 주도하는 것은 정욕, 절제 없는 정욕을 낳는 것은, 자만, 방심으로사람이 욕구를 충족시키면 그 욕구는 감소하거나 사라질 것이다’, 틀린 생각입니다.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어 채우면 더 채우고 싶고,한계를 정하고 지키지 않으면 끝이 없습니다.우리는 어떻게 이런 죄 성에서 자신을 지키며 하나님 백성으로 살 수 있을까요?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로 자신을 지키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습니다.
복음은 가난으로부터 해방이 아니라 고통받는 양심의 죄로부터 해방이다
내 생각이 하나님 계획과 다르다는 것은 어떻게 알까요?내가 하는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지 않을 때, 물론 마귀의 장난일 수도 있지만,기도를 계속해도 일이 잘 진행되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뜻이 아닐 가능성이높습니다. 내 생각과 하나님의 계획이 다를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하나님은 남북 이스라엘이 피를 흘리지 않고 하나가 되기를 원하는데, 만일 남북이 싸워서 통일이 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진정한 통일이 아니라, 피는 피를 부르고 흘린 피가 언젠가 다시 피를 부를 것이기 때문입니다.다윗은 이런 진리를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다윗의 이상한 행동은 모두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것으로, 다윗의 애쓰는 모습은 겉으로는 잘 보이지 않지만, 물 밑에서는쉬지 않고 발버둥치는 백조 같습니다.
다윗이 영적인 흑암의 세월을 끝내고 제일 먼저 한 일은 하나님을 예배하고 관계를 회복한 후 온전히 하나님께 의지한 것, 그 다음은 어려움에 처한 이웃을 돌보아 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두 가지 계명,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는 것입니다. 만일 다윗이 추격하는 일이 급하여, 죽어가는 이집트인을 모른 척하였다면, 다윗은 아말렉의 위치를 알 수가 없었을 것이고, 가족들을 구하지 못하였을 것입니다.‘축복은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시기에 행하신 모든 역사’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일과 하나님의 뜻을 바로 알자. 하나님의 일은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며 하나님의 뜻은 우리의 구원과 부활이다.
초라한 자화상과 겸손은 결코 동의어가 아닙니다. 나의 진정한 가치는 나 자신을 바라보는 나의 눈에 있지 않고, 나를 바라보는 남의 눈에도 있지 않습니다. 세상 어디에 존재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