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없는 것이 무엇인가, 혹은 나에게 있는 것이 무엇인가?’ 똑 같은 질문 같아 보이지만, 긍정적 혹은 부정적 방식에 따라 우리의 삶의 자세가 결정되고, 삶의 자세는 우리의 인생을 결정합니다. 그러나 기적은 엘리사의 뛰어난 능력 때문에 일어난 것도 아니고, 여인의 긍정적인 사고 방식 때문도 아니고, 말씀에 순종한 여인의 믿음 때문입니다. 이적이 일어나는 것은, 여인의 믿음과 이 믿음에 수반하는 순종의 결과로, 긍정적인 사고는 하나님이 역사할 것이라는 믿음에 근거해야지, 긍정의 힘만으로는 이적을 만들 수 없습니다.
사도행전 저자 누가는 하나님께서 땅끝까지 복음의 전파를 위하여 하나님의 사람들을 통하여 역사하시는 과정을 잘 그리고 있다. 이제 기독교는 예루살렘을 벗어나 안디옥으로 옮겨지면서 본격적인 이방인 선교를 시작하게 된다. 이방선교의 본거지가 된 안디옥 교회는 몇 안되는 그리스도인들에 의하여 이루어 진다. 오늘도 하나님께서는 이름도 빛도 없이 그리스도인으로 삶을 살아내는 우리를 통하여 일하심을 감사한다. 할렐루야!
왜 성경에는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나는 이야기, 혹은 무덤이 없는 이야기가 자주 등장할까요? 이 모든 사건은 앞으로 일어날 한 가지 사건을 가르치는 것인데, 놀라지 말라는 뜻 아닐까요? 어떤 사건일까요? 예수께서 무덤에서 일어난 사건으로, 기독교는 부활에 기초한 믿음이기 때문에, 부활이 없으면 기독교의 탄생은 물론 존립의 이유도 없기에, 믿는 것이 무척 중요합니다.
사도행전 9장부터는 사도 바울이 하나님의 "땅끝까지 복음"사역에 어떻게 쓰임을 받는가를 볼 수 있다. 하나님의 자녀, 제자, 일꾼이 되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부르심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그 분의 뜻대로 행하시는 부르심을 통하여 모든 일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신다는 것이다. 오직 우리들은 그 부르심이 은혜임을 깨닫고 그 분에게 순종함으로 우리의 사랑을 드리는 것이다.
하나님의 역사는 땅끝까지 가는 복음의 역사이다. 그들은 흩어졌지만 각자의 자리와 지역에서 복음의 통로가 되는 예배자의 삶을 살아내는 연장선상의 같은 교회이다.
스데반은 교회의 첫 순교자이며 가장 고귀한 삶을 사는 성도였지만 유대교는 스데반을 돌에 맞아 죽어 마땅한 망언자 정도로 여겨왔다. 비록 스데반은 유대교로부터 자신의 목숨을 지키지 못했지만 그의 순교를 통하여 하나님의 땅끝까지 이르는 복음의 문은 열려지게 된 것이다.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내일도 역사의 주인공이시며 역사의 주관자이십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살아 역사하십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몇 가지 중요한 것을 알려주는데,첫째, 하나님은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우리 발걸음을 인도하신다.둘째,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 명령을 실행하는데 필요한 것들을 공급하신다.셋째, 하나님은 교만한 마음을 낮추기 위함여, 때때로 우리를 낮은 곳으로 옮긴다. 넷째, 하나님은 이런 과정을 통하여 우리가 하나님께 온전이 의지하게 한다.
사람 손으로 지은 성전들, 솔로몬 성전, 헤롯 성전 모두 다 파괴되는데,앞으로 지금처럼 교회 건물에서 드리는 전통적인 예배방식은 계속될 수있는 것일까요?예수안에서 성전 된 크리스천이 죽으면 성전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요?눈에 보이는 예루살렘 성전들처럼 파괴되어 없어져 버리는 것일까요?하나님이 궁극적으로 예비하는 성전은, 예수의 몸과부활한 성도들의 몸에 하나님의 이름이 쓰여진 새 예루살렘 성전입니다.교회의 가장 중요한 사명은, 하나님의 자녀를 하나님이 거하는 성전으로 세우는 것,그리고 장차 새 예루살렘의 성전을 이루는 한 모퉁이 반석이…
예수께서 승천하시면서 제자들에게 남기신 행1:8절의 말씀은 그리스도인의 삶의 목적을 알려주신 것이다. 성령받고 권능 받아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의 삶을 사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Idendity이다.
우리 하나님과 나의 하나님의 차이는 무엇일까요?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린 이유가 ‘우리 죄’ 때문이다, 맞는 말이지만, ‘우리’라는 군중속에 숨어버리면, 내 죄도 숨어버리기 때문에, 내 죄가 1/N로 줄고따라서 십자가에 대한 감동이 1/N로 줄어드는 것이 문제입니다. ‘우리 죄가 아니라 나의 죄’ 때문에 십자가에 달린 예수를 바라보아야 하는데, 우리를 강조하다보면, 하나님과의 개인적인 친밀한 관계를 잊어버리기 쉽습니다.